호칭의 뜻
본문
휘하
장군의 통솔 아래에 있는 모든 병졸
슬하
무릎의 아래라는 뜻으로, 어버이나 조부모의 보살핌 아래를 의미
족하(조카)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가 국외로 도망하여
19년 만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중이는 왕위에 올라 진 문공(文公)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중이는 공신(功臣)들에게 상을 주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빠뜨리고 말았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숨어 지낼 때 그에게 허벅다리살을 베어 먹이면서까지
그를 받들던 사람이었을 정도로 문공을 따르던 사람이었으니 실망이 컷을 것이다.
이에 개자추는 어머니와 함께 금상(錦上; 지금의 산서성 개휴현)의 산에 들어가 은거하였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문공은 개자추가 살고 있다는 산 속을 찾아보았으나 그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문공은 결국 산에 불을 질러 그를 산 밖으로 나오게 하려했는데,
개자추는 어머니를 업은 채 나무를 붙들고 불에 타죽었다고 한다.
문공은 그 나무를 치면서 슬피 울더니,
그 나무를 베어 신발 바닥으로 만들어 신었다.
문공은 국외로 피난하는 동안 식량이 떨어지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자기에게 먹여주었던 개지추의 은공(恩功)을 생각할 때마다,
그 신발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슬프도다, 그대여(悲乎, 足下)"
즉 문공 자신의 사람됨은 개자추의 발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족하(足下)라는 호칭은 여기에서 생기게 되었으며
여기서 생겨난 족하라는 호칭은
그 후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천자족하, 대왕족하 등으로 임금을 부르는 호칭으로,
그 후에는 임금의 발 아래서 일을 보는 사관(史官)을 부르는 호칭으로,
후대로 내려오면서 같은 나이 또래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썼으나,
지금은 조카라는 말로 변하여 형제자매가 낳은 아들 딸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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