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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거사를 함께했지만 이후 변절한 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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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와 거사를 함께한 동지 3명도 함께 공판을 받는 모습.

그중 한 명인 우덕순


안중근 의사는 사형 선고(1910년 3월 26일 순국)




우덕순은 3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1925년 작성된 일본 공문서에서 '조선 인민회' 회장이 된 우덕순의 이름이 등장한다.




해당 문서는 하얼빈 '조선 인민회' 회장 우덕순이

일본 외무대신 시데하라에게 보낸 예산 지원 요청서.




'조선 인민회'와 일본 사이에 예산 요청서 및 집행내역서는 지속적으로 오갔다.






여기서 '조선 인민회'는 어떤 곳인가.



일본은 하얼빈 '조선 인민회'를 모범적이라고 하며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는 것.





일본은 밀정비, 첩보비, 기밀비 등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했다.


밀정들의 평균 월급은 50엔.

이는 당대 엘리트인 교사들의 급여보다 많은 수준이었다.





일본은 조선인들로 조선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조선 인민회'의 밀정들을 활용했고

우덕순은 바로 그 단체의 회장인 것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도 우덕순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얼빈 북만호텔에서 발행한 영수증.

북만 호텔은 무도회장같은 유흥 시설도 갖췄던 고급호텔이었고





그곳에서 우덕순은 일본 '특무기관원'과 식사비로만 25엔(현재 수백만원)을 쓴다.







여기서 '특무기관'은 고급 작전 계획을 추진하는 일본의 첩보조직이며, 우덕순은 그들에게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우덕순은


1950년 사망한다.








그리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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