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에서 하이패스로 사형당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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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게는 광해군과 영창대군이 있었고
광해군 눈에 영창대군은 가시같은 존재였음
광해군이 즉위하고 얼마 뒤 영창대군은 강화에 유배됐고
거기서 증살 당함
영창대군은 조선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적통왕자로 살해당할 때 나이가 고작 8세
이어 대비를 폐할 것을 주장하는 대북파의 외침.
조선이 아무리 왕정사회라도 대비는 왕의 어미
아들이 어미를 폐하는 것은 엄청난 일
아무리 왕이라 하여도 대비를 폐하는 일은 엄청난 무리수
이 폐모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광해군은 당대 최고 문장가인 허균을 이용했음
허균 역시 선동 잘 했음
그렇게 인목대비는 1618년 폐비가 됨
그리고 귀신같이 바로 얼마뒤인 같은 해 1618년 남대문에 흉방이 붙는 사건이 발생
존....망........
바로 투옥
과거 한번 스캔들이 있었던 허균의 호민론이 다시 문제화 됨
과거 문제에 기준격의 비밀상소로
(기준격은 전 영의정 기자헌의 아들인데 허균이 영의정 기자헌이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광해를 등에 업고 유배보냄)
광해가 그토록 원하는 폐모살제 (인목은 폐하고 아들은 죽인다) 의 공신인 허균은 부귀영화는 고사하고 바로 존망
허균은 적법한 절차 다 무시당한채 하이패스로 사형 ..
다른 조선 국왕들이 역모죄를 다스리는 과정을 봐도 이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임
오죽하면 사형당하는 날 끌려나온 허균은 당연히 자기가 사형장이 아닌 심문장으로 갈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사형장 하이패스라는 것을 알자 경악한 채 광해에게 아뢰올 말이 있습니다라고 외침
물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음.
리얼 ktx급 사형
역대급 디스
그렇게 3일 만에 하이패스로 사지가 찢겨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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